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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未知 를 향한 自白
    기타 2023. 11. 22. 00:53

     
     
    처음 얼음사막 앞에 섰던 날을 떠올린다. 태어남과 동시에 손에 쥐었던 것들을 모두 빼앗기고 단 하나의 온기도 남지 않은 채 홀로 버려졌을 때. 의외로 마을과 사막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아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조차 아주 늦게 깨달았다. 그를 버린 세상에 다시 받아달라 간청할 것인가? 차가운 바람 속으로 몸을 내던질 것인가?

    어린아이는 믿을 것 하나 남지 않은 세상 대신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눈보라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난생처음 본 얼음 사막이 눈부시게 빛나는 것은, 어딘가에는 온기를 품고 있기 때문일 테니까. 미지를 향한 호기심은 지적 생명체의 기본적인 욕구로, 아주 간단한 계기를 통해 촉발된다. 게르드는 그날부터 자신이 모르는 세상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은 용서하는 것.


    "내 사랑은, 그냥 언젠가 배신당해도 용서하는 거라구요. 믿진 못해도, 그냥 두었다가 그가 통수를 때리면 그냥 맞는 겁니다." 수만 가지 결핍 속에서도 그의 삶이 절망적이거나 비참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저 건강한 사랑이 있었음이라. 게르드는 타인을 믿지 못함에도 미워하지 않았고, 세상을 비난하면서도 공격하지 않았았다. 경계심을 뚫고 들어오는 친근한 존재들은 견고한 우정으로 시간을 쌓아 나갔고, 여린 존재의 수호는 평생의 업이 되었다. 남을 아낄 줄 아는 평범한 아이. 그는 아주 어린 날부터 사랑을 정의했다. '배신당해도 용서할 수 있는 것.'  사랑하는 동생들, 친구들, 옛 인연과 사라진 스승. 얼굴을 보며 지내온 동기들과 안락한 보금자리였던 아카데미, 평생을 살아갈 자신의 고향.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그렇다면 연정은 무엇인가?


    어쩌다 보니 친우의 대화에서 흘러나온 질문. "게르드는 있는가?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흥미 말이다." 
    -진실로 답하건대 없었습니다. 사랑은 쉽다. 하지만 연정은 어렵다. 그의 생은 온통 생리와 안전 따위의 저차원적 욕구를 충족하기에 급급해, 최근에야 취미를 갖고 새로운 싹을 틔우려는 작은 묘목이었으니. 그에게 연정이란 까마득히 먼 어려운 욕구였다. 연필로 그려진 원이 종이 위의 공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
     
     

    미지未知 를 향한 자백

    게르드 스카디 스메플라스 → 아쿠아 그랜드 젤라타
     

     
     
    어떤 천사도, 악마도 태어나는 곳은 지붕 밑. 그러나 그다음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 누구보다도 낮은 천장에 가두어져 살아가는 이가 있는 가 하면 기둥도 보도 없는 곳에 내몰리는 이도 있다. 어디에 심어놓아도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난다. 어떤 소년은 상냥하고 따스해진다. 그의 소중한 친구들이 가르쳐 준 만큼. 어떤 소년은 크고 강해진다. 어릴 적 자신 만한 커다란 활을 들 수 있을 만큼. 아쿠아와 게르드는 까마득한 우물의 깊이와 끝없는 들판의 넓이만큼 다른 존재였다. 차이점이라는 것은 보통 까끌한 사포처럼 거슬려 돌아보게 된다. 그 거친 면을 채우는 것은 서로에 대한 앎이다.

    아쿠아의 작은 손이 흉터 가득한 너른 등에 닿았을 때, 그가 가진 거리감이 전해졌을 때. 게르드는 비로소 그 간극이 신경 쓰인다. 차이를 인지한다. 그가 자신을 알고 싶어 함을, 자신이 그를 알고 싶어 함을 깨닫는다. 그래서, 시작은 아주 가벼운 친절과 호기심이었다. 상냥하고 따뜻한 이에게 느낀 친밀함의 확장이며, 달게 들어간 술기운이고 누군가에겐 자신의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주고 싶다는 어린 욕망이다. 여린 사람에게는 건방지게도 자꾸만 공감받고 싶어 진다. 게르드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그날 오랜 시간을 들여 아쿠아에게 자신에 대해 설명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제 과거의 한 토막. 그가 잘라 온 이야기는 그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사연을 읊은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실 그는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고차원적인 욕구와 나 자신의 감정이 낯선 사람입니다. 어린 날부터 험하게 자라와 상냥하게 구는 것이 낯설고, 책임 질 수많은 것들이 어깨 위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으며, 궁핍한 시절의 기억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지만 결국에 이렇게 자라난 사람입니다. 걱정이 많고,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큰 사람입니다. 설명 위에 이해가 쌓이고, 이해 위에 쌓인 감정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견고하니 당신은 나에게 그런 단단한 마음을 품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다음은 아쿠아의 차례였다. 그는 아주 집중해서 들었다. 자신이 모르는 종류의 것이기에, 더더욱. 혈연을 은연중에 무시하고, 이름 있는 가문을 깔보고, 답답한 집안을 혐오하고, 평범하게 구성된 가정을 어려워하는 스메플라스. 그러한 게르드는 처음으로 '답답한 집안'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게 된다. 아쿠아가 상처받지 않고 집을 나서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이따금 피어오르는 마음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그렇게 게르드는 아쿠아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간다. 그가 이야기해 주는 것이 고맙다. 아마도 처음 꺼내주었을, 작은 친구의 신뢰가 기껍다.

    게르드는 아쿠아에게 사랑을 느낀다. 앎이라는 견고한 기초 위에 감정이라는 구조가 세워진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보일 감정일지 판단해야 했다. 게르드는 평소였다면 가족이라는 지붕을 씌웠을지 모른다. 그건 아주 소중하고, 지켜주고 싶고, 기댈 수 있는 존재를 칭할 수 있는 가장 무겁고 유일한 수식이었으니까. 그는 마침 아쿠아에게 '스메플라스'가 돼라 권한 적 있다. 떠돌이라면 누구나 스메플라스가 될 수 있으므로, 친우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에 말을 꺼냈던 것이었다. 그러니 이것은 가족애라 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게르드는 그렇게 간단히 판단한다.


    "스메플라스는 안 되겠다고?"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평소라면 절대로 참여하지 않았을 테지만, 마지막이라는 기분에 홀려 찾아간 작은 술판. 이상한 술과 어려운 게임, 이따금 이어진 황당한 광경. 방심하고 있던 찰나에 불리는 게르드의 번호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틀었을 때 눈에 들어온 아쿠아의 낯.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몸이 바보처럼 떨린다. 입술에 닿은 흰 이마. 게임은 게임일 뿐. 그러나 두근거리는 심장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저는 이제 가보겠습니다. 아직 짐을 덜 싸서요.' 도망치듯 기숙사로 돌아온 게르드가 이불속에 몸을 던진다.

    '신청 명단에 게르드가 없어서 안 적은 거였어.'

    어째서 지금 이 말이 귓가에 울리는 걸까? 그가 베개에 뜨거운 얼굴을 묻은 채 하루 전의 일을 떠올린다. 파트너와 하는 게임은 낯간지러워서 못 하겠다. 상품에는 별 욕심이 없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 치고 그들은 조금 이상한 빙고판을 하나둘 채워나갔다. 간식을 먹여주고, 술을 마시고, 서로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즐거운 이야기의 끝에, 아쿠아의 손은 게르드의 입가에 닿았다. 그날따라 웃음이 많고, 솔직하던 커다란 녀석이 고개 숙인 아쿠아의 표정을 보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은 틈을 타서. 부드러운 손끝에서 전에 겪은 적 없는 생소한 열기가 피어오른다. 가볍게 닿은 이마에서 시작된 찌릿함이 혈관을 타고 내려가 심장을 마구 울린다. 전투 직전의 흥분도,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에서의 즐거운 두근거림도 아니다. 얼굴이 붉어지고, 동공이 확장되며 땀이 흐른다. 몸을 하나도 움직일 수 없이 긴장되었다. 한 번도 이와 동일한 것을 겪어본 적 없지만, 게르드는 그와 비슷한 상황은 알고 있었다.


    미지未知. 아직 알지 못하는 것.

     
    온통 희고, 검고, 같은 풍경만 반복되어 그 끝을 할 수 없는 얼음사막 앞에 두 다리를 놓았을 때. 공포로 머리가 얼어붙고,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제가 뛰어들어야 할 공간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으로 가득 차 심장이 거세게 두근거리고 눈은 고양감에 가득 차 반짝인다. 어린 게르드가 그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뒷걸음질 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그런 만약은 없다. 뛰어든다. 거센 눈보라는 어린 몸을 막아섰고, 강한 추위는 손 끝에서부터 모든 것을 얼려갔지만 무거운 눈꺼풀이 닫히려는 순간 그의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능력의 발현. 그것은 캄캄한 밤하늘 같은 곳에 겁 없이 뛰어든, 작은 아이를 맞이하는 얼음 사막의 환영 인사와도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게르드는 탐구심을 뒤로하고 도망치는 여자가 아니다.

    심지어 그 길을 함께 가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고민은 더욱 짧아진다. 게르드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며 옆에서는 기꺼이 그 확신을 위해 나아가 주겠다는 아쿠아가 있었다. 그가 헷갈려서, 지쳐서, 게르드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서 떠나버릴지도 모르는데, 고민하느라 그를 놓칠 만큼 멍청한 놈은 아니다. 여전히 어렵다고 해도 전달해야 한다.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다정한 강함을 지닌 당신을 그의 곁에 붙들어 놓아야 했다. 해서 기숙사에 돌아온 당신에게 말한다. 한시쯤에 만날 수 있을까요? 그래. 망설임 따위 구겨 불 속에 넣은 지 오래다.
     

     
    명계는 아름다운 곳이지. 천계와 마계를 겹쳐놓은 것 같아서, 낮과 봄은 신비하고 밤과 겨울은 익숙하다. 새벽 한 시, 졸업식 이후 겨울날 밤. 그는 명계에서 가장 익숙한 상황에서 가장 낯선 행동을 하려 한다. 교복을 몇 번 고쳐 입고, 먼저 기숙사를 나와해야 할 말을 정리해 본다. 안타깝게도 계획하고 말을 내뱉는 것에는 서툴어, 그저 삼십 분 내내 구석에 죽치고 앉아있는 셈이 되었지만. 교복을 깨끗하게 입고, 머리카락을 다시 한번 빗고, 안경을 고쳐 쓰고. 멍하니 달을 바라보자면 구름이 속절없이 흘러간다. 게르드가 부르면 밤을 새워서라도 나올 수 있다는 아쿠아가 괜히 눈앞에 아른거려 가슴팍 안쪽이 온통 간질거린다. 그가 나와 달 밑에서 게르드를 맞으면, 어떤 두서없는 말이라도 내뱉게 되는 것이다. 오늘 날씨가 춥네요. 겉옷 입으시겠습니까? 아, 참. 그렇지. 내 능력이 있었지. ...졸업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네요. 말을 세번 쯤 돌리고 나면 슬슬 때가 다가온다. 그를 너무 오래 세워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쿠아."  게르드가 가볍게 그의 손을 잡았다. 그가 게르드의 말을 잘 들을 수 있게, 성인식과 같이 한쪽 무릎을 꿇고. 
    "나는 여전히 확신이 안 섭니다. 어쩌면 이건 연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나는 그걸 너무나도 몰라요. 하지만 당신이 곁에 있으면 언제까지고 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게르드는 그의 얼굴을 보며 말할 자신이 없어, 잡은 손에 이마를 맞대었다. 표정 대신 온기로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당신의 손이 내 몸에 닿는 것이 좋아요. 그러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이름이 불리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이 마주치면 다가가고 싶어 져요." 어느새 짙은 피부는 붉게 물들어가고, 땀 한줄기가 뺨을 타고 조용히 흘러내린다. 어설프고, 바보 같은 감상을 나열하며 땅 속으로라도 숨고 싶다.

    "나는 결혼보다는 동맹이 어울리고, 편안한 휴식보다는 견고한 수호를 택할 사람입니다. 손에 쥔 것보다 어깨에 맨 것이 많고, 드러내는 마음보다 속으로 삼켜내는 울음과 웃음이 많아요. 그래서 당신을 헷갈리게 할지도 모르지. 서운하거나 화나게 해 버릴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는..." 그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당신을 올려다본다.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당신이 이 손을 놓지 않고 나와 함께 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쿠아. 당신이 부른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 당신을 지킬 테고, 즐거운 곳으로 언제든 데려갈 것이고, 솔직한 나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게요. 같이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나는, 나는... 당신이 나에게 욕심을 내주었으면 좋겠어..." 말 끝이 사정없이 떨린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기적이고 한심한 데다, 서툴기까지 한......
     


    "그러니, 아쿠아 그랜드 젤라타. 나조차 정의 내리지 못하는 이 마음을 당신이 도와주겠습니까?"
     

    진솔한 자백自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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